2024/12 22

여행의 기록을 읽고, 안예진, 퍼블리온, 2024.

독서를 하는 사람들의 상당수의 목적은무언가를 알고자 함이다.그리고 그렇게 한권한권 독파해나가던 어느날 문득 깨닫는다. 내게 아무것도 남은 게 없음을... 물론 아예 남지 않은 건 아니고강렬하게 와닿은 몇 가지와대강의 덩어리 형태로 어렴풋이 남겠지만분명히 책을 펼칠 때의 욕심을 채우는 수준은 결코 아니다. 책을 읽을 때는 머릿속에 들어와 차곡차곡 쌓이는 거 같지만대부분 내용은 불과 수시간, 수일내 감쪽같이 증발된다. 그래서 읽은 책을 내 것으로 온전히 만들고자 하는 사람은기록의 방식은 저마다 다를지라도 기록을 한다. 큰마음을 먹고 여행을 다녀와도막상 순간순간의 찰나만 남아있지 구체적인 기억은 모두 사라지고 없다는 안타까움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이 책은 바로 자신의 여행을 좀 더 구체적으로 기억하고자 하는..

홍길동이 물리 박사라고를 읽고, 정완상, 브릿지북스, 2024.

사람은 지식을 그냥 그대로 배우기보다 뭔가에 빗대어 배우면머릿속에 더 잘 들어온다. 학생들이 가장 기피하는 대표적 과목이자심지어 학년이 올라갈수록 포기자가 속출하는수학의 경우한참 전에 이야기와 수학을 섞어서수학 개념을 부담없이 익히게 한 수학동화라는 형식의 책이 나오게 된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는브릿지북스에서 펴내는'고전에 빠진 과학' 총서의 첫번째 책이다. 한국인이면 모를 수 없는홍길동전에 과학을 섞어서 초등 과학과 중등 기초과학 개념을 쉽고 재밌게 배울수 있게 하였다. 중요한건 과학을 쉽게 전달하는 재료가 되는 이야기가창작동화가 아니라 누구나 아는 홍길동전이라는 점이다. 창작동화에 얹으면아무래도 낯설기 때문에 과학을 쉽게 전달하는 과학동화의 의도가 100% 전달되기 어려울 수 있다.그러한 의도를 제..

독서 손절자 레벨업 합니다를 읽고, 고정원, 학교도서관저널, 2024.

수포자는 수학포기자의 약자인데작가는 책읽기를 놓은 아이들에게 '독서 손절자'라는 이름을 붙인 게 특이하다. 독서를 대하는 아이의 태도를 크게 다섯 단계로 나누어단계에 해당하는 사례를 소개하거나인터뷰 또는 꼭지글 형식으로 설명하고 있다. 공공도서관 사서로 일하는 지은이가현장에서 겪은독서관심과 수준이 천차만별인 아이들을 파악하고그에 맞는 처방을 시도하거나해당 단계의 아이들이 궁금할 법한 독서에 관한 호기심을 해소하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제목만 보면 어린이 독서가들이고단수 독서인으로 넘어가는 비법을 줄 것 처럼 보이지만책읽기가 억지로 된다고 생각하는 건 누군가와 무작정 사랑하라고 강요하는 것과 같으므로 그런 건 없다.대신 각 단계의 말미에'이렇게 해보자'는 실천사항을 정리해서 책과의 운명을 만들 수 있는 방..

케이팝 씬의 순간들을 읽고, 김윤하/미묘/박준우, 미래의창, 2024.

이제는 천하의 빌보드 차트를 마음대로 들락날락하는 케이팝 시대가 되었으니격세지감이라는 말보다 적절한 말은 없을 것이다. 한국도 대중가요 문화는 항상 있어왔지만그 위에는 항상 영미에서 들어온 팝음악이 있었다.가요보다는 팝을 듣는 청자가 많았다는 뜻이다. 그러던 것이서태지가 대중음악에 대한 한국인의 관심을대중가요에 집중하게 하였다.보통의 한국인은 팝보다는 가요를 듣는 것이 자연스러워졌다는 말이다. 하지만 가요는 한국인이 듣는 음악이었지한국가요가 해외로 뻗어나가 세계인의 귀를 사로잡는 것은 요원한 일이었다. 2000년을 전후로 보아나 기타 가수들이 일본이나 동남아 등지에서 인기를 끌기도 했으나아직은 가요가 세계의 일부분을 설득하는데 그쳤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빌보드에 한국가수가 걸핏하면 등장하고 미국..

하이 제시카를 읽고, 김형주, 미다스북스, 2024.

저자는 마흔에 들어서야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에 의심을 풀고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생각과 실천 끝에 독서와 건강, 소통, 마음가짐을 꼽고그에 대한 책을 썼다. 제시카는 마흔에 들어선 여성들을 일컫는 대명사로 사용하고 있지만여자가 아니더라도 여전히 불혹하지 못하는위기의 40대 모두의 독자를 지칭하는 말이라 할 수 있다. 여자만 보는 여자만을 위한 책이 아니라는 것 소위 엘리트 코스를 안전하게 밟아온 지은이가다람쥐 쳇바퀴 일상에 치이다자각의 디딤돌을 삼은 것은 책이다. 스포일러를 무시하고 친절하게 자신이 재밌고 의미있게 본 여러권의 책설명을 마친 저자는건강과 소통, 마음가짐의 중요성을 차례차레 강조하며흔들리지 않는 인생을 위한 자신의 슬기로운 마흔 생활을 정리한다. **첫장인 '마흔에 필요한 독서'..

박테리아가 침투했다 면역 세포 출동을 읽고, 플라비오 알테르툼, 한울림어린이, 2024.

우리 몸은 항상 외부 세균의 공격을 받는다.그럼에도 우리가 항상 아프지 않은 건우리 몸 안의 면역 세포가 침입세균과 싸워서 이겼기 때문이다. 우리가 모두 자각하지는 못하지만 우리 몸안에서는계속 전투가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다. 몸이 아프면 열이 오르는 것도몸의 열을 올려 침입 세균을 익혀서 물리치려는 작용이다. 두명의 브라질 작가들은면역세포와 침입 박테리아가 벌이는 전쟁의 과정을다니엘이라는 축구를 좋아하는 열살짜리 어린이를 통해아주 박진감있게 그려내고 있다. 그 과정이 얼마나 긴박한지흡사 비상계엄을 사이에 둔 양측의 숨가쁜 행동을 보는듯하다. 그림체는 잘 그린 것 같지 않아 보이지만벌어지는 상황을 아주 강렬하고 정확하게 전달해준다.책에 맞는 최고의 그림을 그려냈다는 걸 알 수 있다. 자칫 심심하게 흐를 수..

이웃집 빙허각을 읽고, 채은하, 창비, 2024.

역사와 허구를 섞은 팩션동화이다. 빙허각은 지금까지 알려진 조선 유일의 여성 실학자로여성생활백과인 의 지은이다.라는 저서도 있는데 안타깝게도 625 전쟁으로 소실되었다고 한다. 빙허각의 집안이 한양에서 가세가 기울어지방에 오게되었고지방에 사는 덕주라는 신여성 기질이 많은 소녀에게학문적 조수일을 시키는 등의 학문 교유를 통해여성의 자기실현을 강조하는 여성주의적 관점을 가진 작품이다. 당연히 덕주는살림 잘하는 여자로 자라는 것이 미덕이고글월문을 읽고 책쓰는 일 같은 건 환영받지 못하는 환경과 싸우는 배움에서 핍박받는 조선 여성을 대변한다. 조선 유일의 여성 실학자는빙허각이라는 호와 이씨라는 성은 남겼지만끝내 이름은 남기지 못했다. 오늘날에도 자기 지위를 누리지 못하고비천한 대우를 받고 있는 존재가 어디에든 ..

고백 타이밍을 읽고, 주미경, 키다리, 2024.

초등학교 고학년생들이 사랑의 감정에 휘말기고 애먹으면서 한단계 성장하는 내용의 동화책이다. 이라는 제목만 봐도 사랑은 해야하는데 뭔가 엇갈리고 맞지 않아어려움을 겪을 거라는 예감을 전달해준다. 동화를 읽으면서 요즘 초등학생의 사랑은 과거와는 완전히 달라졌음을 알 수 있다.사귐과 사랑이 독자적인 가슴앓이로부터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감정의 흔들림이 아니라좋건싫건 한번은 맞아야 하는 예방주사같이 인식되어모든 친구들이 주목하는 무대 안에서 사랑의 공식 안에 억지로 들어가려는 현대 초등학생의 레디메이드한 단면이 읽혀지기도 한다. 누구를 좋아하는 것을 거리낌없이 표현하고 사랑의 주인공이 되는 것에 대한 의무감이랄까.확실히 8-90년대와는 판이한 사랑법이다. 사랑이라는 복잡한 감정에 소용돌이치는등장인물들의 수준 높은 ..

오 방울토마토를 읽고, 박지선, 발견, 2024.

존재감이 크지 않았던 방울토마토에 대한 기념비적인 작품이 나왔다.아마 과일과 채소가 등장하는 책 중에서도 대표작으로 자리매김하지 않을까.그만큼 기발하면서도 번득이는 그림책이다. 이 책의 총서명인 '오시리즈'는 2021년부터 딸기를 시작으로 당근, 감에 이어이번에는 크리스마스에 맞춰 방울토마토를 등장시켰다. 동물들이 사람처럼 사는 세상에서방울토마토는 크리스마스 케잌 꼭대기를 장식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하다.하지만 케잌 꼭대기는 블루베리가 차지한다. 그래도 희망을 잃지 않고 탱탱함을 유지하고자 샤워를 하고더 빨갛고 반짝반짝해지기 위해 낮에는 햇볕을 받고 밤에는 달빛을 받는다. 방울토마토가 다음 크리스마스를 위해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는 중에어린이에게 선물을 배달하는 산타할아버지가 타고 다니는 순록썰매의 순록이 ..

에이든 이탈리아 중북부 여행지도 2025-2026을 보고, 편집부, 타블라라사, 2024.

2018년 를 시작으로지도책을 전문으로 출판하고 하는 타블라라사의 새지도가 나왔다. 참고로 타블라라사=Tabula Rasa 는 라틴어로 하얀 도화지라는 뜻이며철학계에서는 인간이 태어날 때는 마음이 백지와도 같은 상태로 태어나며 출생이후에 외부 세상의 감각적인 지각활동과 경험에 의해 도화지가 채워질 때 지적 능력이 형성된다는 개념어로 쓰인다.  단독 외국 국가로는 대만 지도책을 처음 냈고이탈리아의 경우 올봄 로마편을 펴낸데 이어 두번째로 중북부편을 다루고 있다.흔히 이탈리아를 장화로 비유하는데 장화의 중반부터 위쪽 지역을 담았다. 부제명에 개별도시명을 언급하고 있는데 이중에서는산피에트로성당, 코무네 광장 등이 있는 '아시시'가 최남단이고밀라노/베라노가 최북단이다.  통상 여행지도책은 한권의 가이드북 형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