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작도서관 한책읽기

한책읽기 독서회 25차 토론 논제

도서관돌이 2014. 8. 20. 15:20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저자
고미숙 지음
출판사
북드라망 | 2012-08-31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공부’에 대한 새로운 관점과 열정을 불러일으켜 10대부터 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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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토론 논제는 인문학 공동체 에피쿠로스에서 만들었으며 동작도서관에서 일부  수정하였습니다.

*실제 독서회에서는 검은 글씨 논제는 건너뛰고 빨간 글씨 논제로만 진행하였습니다.

*토론 논제 전자책으로 보기

 

 

1. 이 책을 읽고 난 후 소감을 말씀해 주세요.

 

 

 

 

 

2. 고미숙은 이 책을 통하여 새로운 공부법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이 책을 읽으시고 달라진 것이 있다면 말씀하여 주십시오.

 

 

 

 

 

 

3. 고미숙은 이 책에서 현대사회가 공부할 수 없는 사회를 만들고 있고, 공부에 대한 모든 생각을 학교에 맡기고 학교식으로 재편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이 말에 동의하시나요?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노동과 여가, 정치 활동과 가정생활 등 삶의 모든 것이 공부가 되는 것을 포기하도록 만들고, 나아가 "그것에 필요한 관습이나 지식을 가르쳐주는 것을 모조리 학교에 맡겨"버린다. 결정적으로, 그럼으로써 공부에 대한 모든 생각을 '학교식으로' 재편한다. 그 결과 전 사회를 '학교화'한다는 것. "무슨 소리! 요즘 학생들은 공부를 학교가 아니라, 학원에서 하고 있는 걸." 이런 반문을 할지도 모르겠다. 맞다. 바로 그게 전 사회가 '학교화'되었다는 결정적 증거다. 사교육은 아무리 날고긴다 한들 학교식 공부에서 단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다. 아니, 오히려 학교의 이념을 가장 순수하게, 가장 극단적으로 실현해주는 것이 바로 학원이다. 따라서 중요한 건 공교육이냐 사교육이냐가 아니라, 어떤 식의 공부가 실현되느냐인 것. 더 끔찍한 건, 학교가 늘어날수록 이런 양상은 한층 심화될 뿐이라고 한다. , 의무교육을 확대하고, 교육기관을 늘리고, 학교에 대한 각종 지원을 늘린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그럴수록 학교는 더더욱 공부에 대한 이미지와 표상들을 몽땅 흡입해버리고 만다.(p.33)

 

 

4. 이 책에는 공부란 눈 앞의 실리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삶과 우주에 대한 원대한 비전을 탐구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정의하는 공부는 무엇인가요?) 여러분은 이 말에 동의하시나요?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공부란 눈앞의 실리를 따라가는 것과는 정반대의 벡터를 지닌다. 오히려 그런 것들과 과감히 결별하고, 아주 낯설고 이질적인 삶을 구성하는 것, 삶과 우주에 대한 원대한 비전을 탐구하는 것, 그것이 바로 공부다. 더 간단히 말하면, 공부는 무엇보다 자유에의 도정이어야 한다. 자본과 권력, 나아가 습속의 굴레로부터 벗어나 삶의 새로운 가능성을 탐색해야 비로소 공부를 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지금 대학은 이런 식의 '공부법' 자체를 잊은 지 오래다. 여학생들이 대학의 대세를 이뤘다는 사실을 마냥 기뻐하기가 뭣한 건 이런 연유에서다. 여성들이 오랜 압제에서 벗어나 마침내 지성의 영토를 장악하고는 기껏 '돈과 권력만 밝히는' 짓을 해서야 되겠는가.(p.40~41)

 

학교가 배움터가 아닌 제도로서 존재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근대 사회에서 학교란 스승이 있고 학문이 있는 곳이 아니라, 어떤 제도나 시스템으로서만 작동한다. 고로, 학교를 들어간다는 건 그 제도적 장치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고등학생들이 대학을 선택할 때, 어떤 교수가 있는지 그 학과의 분위기는 어떤지 등을 고려하는 일은 거의 없다. 커트라인과 등급, 장학금 여부, 이런 정보만 있으면 충분하다. 그러니 대학 신입생들이 대학에 대한 모든 기대가 무너지는 아픔(?)을 경험하는 거야 당연지사, 자업자득이다. 머나먼 이국땅으로 유학을 가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어떤 선생을 만나 어떤 학문을 터득하겠다는 발상은 전혀 하지 않는다. 학교의 위상, 그 학과의 사회 진출 비율, 그게 선택의 유일한 척도일 뿐이다. 그러기 때문에 학벌이 높아질수록 공부와 삶 사이의 소외와 간극은 더욱 극심해질 수밖에 없다. (p.80)

 

 

5. 아래 글을 읽으시고, 논제에 답해 주세요.

제시문 A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이것은 나의 이야기이지만 나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나는 25년 동안 경주마처럼 길고 긴 트랙을 질주해왔다. 우수한 경주마로, 함께 트랙을 질주하는 무수한 친구들을 제치고 넘어뜨린 것을 기뻐하면서. 나를 앞질러 달려가는 친구들 때문에 불안해하면서. 그렇게 소위 '명문대 입학'이라는 첫 관문을 통과했다.”

 

이 또한 나의 적이지만 나만의 적은 아닐 것이다. 이름만 남은 '자격증 장사 브로커'가 된 대학. 그것이 이 시대 대학의 진실임을 마주하고 있다. 대학은 글로벌 자본과 대기업에 가장 효율적으로 '부품'을 제공하는 하청 업체가 되어 내 이마에 바코드를 새긴다.”

 

- 대학 거부를 선택한 고려대 김예슬 씨의 대자보

제시문 B

 

오늘, 나는 대학을 거부한다. 아니, 싸움을 시작한다.

 

얼마 전 고려대학교 김예슬 씨의 자퇴 선언이 있었다. 혹자는 부적응자의 현실 도피라 말하지만, 문제는 적응하지 못하는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누구도 적응할 수 없는 현실의 구조 그 자체에 있다. 대학 거부라는 방법을 선택하지 않는 우리들도 잦은 회의감에 휩싸이며 때로는 현실에 타협하기도 하고, 때로는 방황하기도 하며 살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12년간 어른들이 우리에게 심어준 대학교에 들어가면 누릴 수 있다는 '자유', '낭만' 따위에 대한 환상을 가슴에 품고 묵묵히 내 친구를 밟고 올라서기 위해 노력해왔다. 간신히 그 과정을 거쳐 대학교에 들어온 지금, 나는 우리가 어린 시절 가졌던 대학 생활에 대한 환상은 그저 '환상'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오히려 대학이란 곳은 본격적 무한 경쟁의 닫힌 공간일 뿐이며 그 공간은 우리에게 그 어떤 삶의 의미도, 방향도 가르쳐주지 않는다. 2전공 의무화, 영어 강의 확대, 상대평가제 등의 제도는 더욱 많은 것을 강요하고 무조건 일렬로 줄을 세우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전 세계를 강타한 경제 위기를 그 어떤 주류 경제학도 설명하지 못하고 패닉에 빠진 마당에, 대학은 별 고민 없이 지난 수십 년간 사용해온 커리큘럼을 답습하고 있다.

 

이렇게 낡고 답답한 대학에 우리의 미래가 있을까? 무한 경쟁의 쳇바퀴에서 오로지 앞만 보고 달려가지만 제자리에서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하는 듯한 불안감, 가만히 있으면 남들에게 뒤처지는 것만 같은 불안감을 강요하는 이 대학에 우리가 상상한 대학 생활이 있는가?

 

이 물음에 답해야 하는 사람, 대안을 만들 수 있고 만들어내야 하는 사람은 대학 교수님도, 정치인도 아니다. 바로 우리 대학생들이다. 우리의 삶을 그들에게 내맡길 수는 없다. 이에 나는 오늘 조용히 다짐을 해보려 한다. 자발적 퇴교와는 조금 다른 방법으로, 그러면서도 지금의 대학을 거부하기로. 대학의 주인이 되어 대학의 변화를 주도하기 위한 싸움을 벌이기로(중략)

 

격변의 시기,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으면서 우리를 구속하는 대학 내의 모든 구습과 싸워야 한다. 경쟁 일변도의 신자유주의의 피해들이 더 이상 용인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을 뿐만 아니라, 이 기존의 가치들이 더 이상 아무런 대안도 제시할 수 없는 상황이기에 이 싸움은 더욱 절실하다. 시대에 뒤떨어진 낡은 커리큘럼, 창의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획일화된 교육 방식에는, 대학생을 미래 사회의 주체로 보지 못하는 낙후한 교육관이 근본에 자리하고 있다.

 

-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08학번 채상원의 대자보

 

 

(1) 제시문 (A)(B)는 모두 현재 우리나라의 교육체계에 문제가 많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우리나라 교육체계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요?) 여러분도 여기에 동의하시나요? 동의하시면 찬성표지판(), 동의하지 않으시면 반대표지판(×)을 들고, 그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2) 그렇다면, 바람직한 우리나라 교육의 모습을 그려주세요.

 

6. 아래의 글을 읽고 논제에 답해 주세요.

제시문 A

 

(1) 근대초기 : 근대 초 어린이에게는 교육을 받을 권리인 학습권이 발달했다. 그러나 근대교육은 어린이의 내면형성에 관한 문제이기 때문에 교육에 국가권력이 간섭할 수 없다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교육방법에서 국가가 주도하는 주입식 교육이 강하게 부정되었으며, 부모나 가정교사에 의한 가정에서의 지도가 가장 바람직한 교육으로 인식되었다.

 

(2) 근대후기 : 학교를 필요로 하는 사회적 요구가 일어났다. ‘학습권이 기본 권리로 인식되면서 이것을 제도화하는데 있어서의 기본 원칙은 교육의 기회균등이라 할 수 있다. 교육의 기회균등 문제는 독일의 종교개혁자 루터가 제기하였다. 그는 어린이들이 성서를 읽고 하느님의 뜻을 이해하기 위해서 어린이의 취학을 독려하고, 필요하다면 강제적으로라도 무상교육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프랑스혁명의 유력한 지도자의 한 사람이었던 M. 콩도르세는 교육을 종교단체의 손에서 해방시켜 무상으로 전 시민에게 교육의 기회를 주는 공교육조직의 수립을 제안했다. 교육의 기회균등은 국가가 어떤 형태이건 교육제도의 구성과 운영에 관여함으로써 달성된다. 이것은 강제교육의 경우에 명확해진다. , 국가 쪽에서 교육을 강제하는 것은 보호자가 자기 자녀에게 교육을 받게 할 의무를 지닌다는 형태로 나타난다. 그것은 국가가 보호자에게 부과하는 강제의무이다. 그리고 강제교육은 원칙적으로 무상교육이었다. 학교는 공비(公費)로 설치되고, 또 공립학교는 무료로 시행되었다. 그러나 교육은 전적으로 지육(知育)의 발달에 한정되었으며 공교육에서 종교도덕교육이 제외되었다.

 

(3) 현대교육 : 시대가 지나고 자본주의체제가 성립한 데다 산업자본주의가 확립됨에 따라 근대교육사상의 원칙은 조금씩 변모해 갔다. 구체적으로는 대중교육에 대한 국가개입이 요청되어, 하나의 공교육관이 성립함으로써 여기에 종래의 원칙의 대폭적인 수정이 시작되었다. 이윽고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전반에 걸쳐서, 산업자본주의의 확립기를 맞이하자, 대중의 교육기회가 확대되었다. 공장학교와 기업 내 학교의 설립이 기획되어, 대중교육의 이니셔티브는 옛 세력에서 신흥 부르주아지의 손으로 넘어갔다. 이리하여 자본주의적 현실에 부응하는 공교육사상은 이른바 이중구조의 특징을 지니게 되었다. , 국가의 교육개입을 부정하는 사고방식과 대중교육에 대한 국가개입이라는 사고방식이 병존하게 된 것이다. 더 자세히 말하면, 유럽의 선진국도 19세기 후반에 들어서자 고전시민사회가 크게 바뀌어 독점자본주의 단계로 진입했으며, 국가 또한 복지국가대중국가로 변모해 갔다. 그리고 차츰 노동자계급의 자기교육사상이 개화기를 맞았다. 이와 동시에 국가가 도덕의 교사로서 대중교육을 지도하게 되었다.

제시문 B

 

1980년대 이래 여러 나라에서 공공정책 결정에 영향을 준 신자유주의적 접근은 우리나라 교육 개혁에도 부분적으로 도입되어 쟁점이 되고 있다. 신자유주의적 접근에 의하면, 교육을 국가 기획에 의해 관리하는 것보다는 자유시장 논리에 맡기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왜냐하면 학교 간, 교사 간 경쟁과 평가를 통해 교육 수요자가 원하는 질 좋은 교육을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학교는 필요한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그 학교의 고객(학부모, 학생)의 결정에 의존하게 된다. 따라서 학교는 누구보다도 그 고객의 이익을 위해 수행하지 않을 수 없는 압력을 받는다. 그러나 우리의 교육계는 이러한 신자유주의적 교육관에 대하여 저항이 크기 때문에 당분간 학교와 학부모 간의 갈등을 정부가 조율(調律)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실, 중학교 의무교육, 고교 평준화, 고등 교육 수요의 증가 등으로 학교 고객은 풍부하다. 그러므로 외국과 같이 학교가 고객 유치를 위해 경쟁하지 않고 국가의 지시에 따라 학교를 운영하고 안주(安住)하여도 그렇게 문제될 것이 없다

 

- 김윤태, <학교 교육을 살리자> 중에서

 

(1) <제시문 A>는 서구 교육의 발전 단계를 약술한 것입니다. 이 글에 따르면, 현대교육이란, 칼 맑스의 말처럼 사회 경제구조라는 토대 위에 서 있는 상부구조입니다. 이 상부구조는 경제구조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현재 우리 사회의 경제구조가 교육을 결정합니다. 이 말에 동의하십니까? 동의하신다면 찬성표지판(),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시면 반대표지판(×)을 들고, 그 이유를 말씀해 주세요.

 

인간은 자신의 의지 독립된 특정의 생산 관계 속에 편입된다. 생산관계는 물질적 생산력의 특정 발전 단계와 조응한다. 이러한 생산관계의 총체가 사회의 경제구조를 형성하고, 이 경제구조 위에 법적정치적 상부구조가 세워지며(교육예술종교윤리 등) 특정 형태의 사회 의식들이 이 상부구조에 조응한다. 물질 생활의 생산양식은 사회적정치적정신적 활동 전반의 성격을 결정한다. 인간의 의식이 자신의 존재를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사회적 존재가 자신의 의식을 결정한다.

- 맑스의 <정치 경제학 비판을 위하여> 서문 중에서

 

(2) 서구 교육의 발전 단계를 약술한 <제시문 A>에 나타난 바와 같이, 교육에 국가가 개입할 것인가, 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는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제시문 B>는 신자유주의 교육관을 수용할 것인가, 아닌가의 문제를 두고 국가가 적극 개입하여야 한다는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교육에 국가가 적극 개입해 학교를 운영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시면 찬성표지판(), 교육을 국가에 의존하기 보다는 시장원리에 맡겨두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면 반대표지판(×)을 들고, 그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3) 이 책에서 고미숙이 말하고 있는 <공부>를 시현하기 위해 가장 적합한 교육 형태는 국가가 운영하는 교육제도(공교육)일까요, 아니면 시장원리에 따르는 교육제도(사교육)일까요? 국가 중심의 교육 형태(공교육)라고 생각하시면 찬성표지판(), 시장 중심의 교육제도(사교육)라고 생각하시면 반대표지판(×)을 들고, 그 이유를 말씀해 주십시오.

 

(4) 여러분이 생각하시는 가장 바람직한 교육 제도의 모습을 자유롭게 이야기 해 주세요.

 

7. 이 책에서 <고미숙>이 말하고 있는 공부를 정리해 주시고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말씀해 주세요.

 

이 책과 같이 읽으면 좋은 책을 추천해주세요.

(미리 생각해서 적어오기)

* 서명:

* 이유:

 

책을 읽은 후 나의 삶에 적용할 실천사항을 이야기해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