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토론 논제는 인문학 공동체 에피쿠로스에서 만들었으며 동작도서관에서 일부 수정하였습니다.
*실제 독서회에서는 검은 글씨 논제는 건너뛰고 빨간 글씨 논제로만 진행하였습니다.
□ 토론 논제
1. 이 책을 읽고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을 이야기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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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래 글처럼 난 아직 어리니까, 난 여자니까, 난 아저씨니까, 난 노인이니까, 난 가난하니까, 난 몸이 약하니까……. 이런 식으로 너무 빨리 무언가를 포기해 버린 경험이 있나요?
제가 철학의 첫걸음이 우리 자신의 능력을 아는 데 있다고 말한 건 좀 다른 뜻에서입니다. 저처럼 수영도 못하는 사람이 시원한 바닷물이라고 냅다 뛰어드는 건 무모한 행동입니다. 정말 어리석은 짓이겠죠. 하지만 그렇다고 제가 수영을 배울 능력이 없다고 말하는 건 아니에요. 오히려 지레짐작으로 “난 수영을 할 수 없어. 이 몸에 그런 건 불가능해.”라고 말할 때, 그때야말로 우리는 자기 능력을 모르는 것일 수 있습니다.
질 들뢰즈라는 철학자는 이런 말을 했답니다.
“나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이 말은 자기 능력에 대한 일종의 시험입니다. 당신 능력을 시험해 보라는 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난 그걸 해내지 못할 거야.’ 혹은 ‘그건 너무 창피한 일이야. 난 할 수 없어.’ 그러면서 자신이 할 수도 있었을 일들을 포기해 버립니다. ‘난 할 수 없었을 거야.’ 이렇게 말하는 건 너무 쉬운 일입니다. 불행히도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무엇을 할 수 있었는지도 모른 채 죽습니다.”(p.40~41) |
3. 저자는 이 책에서 ‘나에게 익숙한 것에서 떠나 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익숙한 것이 편하고, 낯선 것은 불편합니다. 또 ‘모르는 것이 약이다’라는 우리나라의 속담처럼 알고 나면 도리어 힘들어지기도 합니다. 제시문의 ①은 사실이지만 알고 나면 불편합니다. 구태여 제시문의 ①처럼 생각하고 인지(認知)할 필요가 있을까요?
우리는 생각하기 위해, 즉 다르게 생각하고 새롭게 생각하기 위해, 이제까지의 모습에서 떠나 볼 필요가 있어요. (중략) ‘나는 생각한다’고 말할 때, 더 엄밀히 하자면 생각이 내게 일어날 때, 우리는 지금의 ‘나’에서 떠나기 시작한 거라고. (p.75) |
① 꽃은 식물의 생식기다.(사실 판단) ② 꽃은 아름답다. (가치 판단① : 미적 판단) ③ 꽃은 선(善)하다. (가치 판단② : 도덕 판단) |
4. 아래 글을 읽으시고 물음에 답해 주세요.
< 제시문A >
생각한다는 것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 쉽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의심해 보는 일이기도 해요. 철학자들은 우리가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에 '왜'냐고 묻곤 하지요. 당연한 것에 '왜 그럴까?'라고 물을 때, 우리는 조금씩 생각하게 됩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익숙한 말, 익숙한 일은 그냥 지나치기 쉽습니다. 우리가 가진 생각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어떤 일을 마주칠 때, 그때 우리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
< 제시문 B >
장미란 탄원서 논란
역도 선수 출신 장미란이 영남제분 회장의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 논란에 휩싸인 가운데 오늘 사과문을 전했다.
장미란은 21일 장미란 재단 공식 페이스북을 통해 사과문을 공개했다. 장미란은 사과문에서 “은퇴 후 지난 10월 인천전국체전 당시 후배들 격려차 오랜만에 경기장에 방문했다. 당시 역도연맹 관계자가 회장님이 어려운 여건에 있는데 우리가 도움을 드려야하지 않겠느냐고 말씀하시기에 서명을 했다”며 배경을 설명했다. 이어 장미란은 “서명 당시, 탄원서에 대한 내용은 없어 확인하지 못했다. 서명 명단을 봤을 때 연맹 임원들의 서명이 있었고, 역도인으로서 연맹을 위해 해야 하는 일인 줄로만 알았다. 많이 당혹스럽고 유감스럽다”며 입장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장미란은 “사회적으로 큰일인 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저의 불찰이다. 심려를 끼쳐드려 죄송하다”며 글을 마무리했다. 앞서 서울지법은 대학역도연맹 소속 약 300명이 최근 법원에 류원기 영남제분 회장에 대한 선처를 호소하는 탄원서를 회장 측 변호인을 통해 제출했다고 밝혔다. 해당 명단에는 장미란도 포함돼 있어 논란을 일으켰다.
류원기 회장은 회사자금 87억 원을 빼돌리고 이중 약 2억 5천만 원을 자신의 아내 윤길자 씨 입원비 등으로 사용한 혐의로 구속 기소돼 현재 재판 중이다. 이른바 ‘영남제분 사모님’으로 세간에 알려진 윤길자 씨는 여대생을 청부살인해 무기징역형을 선고 받았지만, 허위진단서 발급 등의 수법으로 형집행정지를 받은 바 있다. - <매경닷컴>(2013년 12월 22일자) |
(1) <제시문A>처럼 저자는 “생각 없음은 ‘생각했다’기보다는 ‘반응했다’이며 생각한다는 것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 쉽게 고개를 끄덕이는 것을 ‘의심’해 보는 일이고 당연한 것에 ‘왜 그럴까?’라고 물을 때, 우리는 조금씩 생각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보다 <제시문B>처럼 ‘반응’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여러분은 '생각을 하시고 행동'하시는 편인가요, ‘반응’하시는 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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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제시문B>에서처럼 ‘반응’하다보면 개인적으로, 혹은 사회적으로 해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생각’하기 위하여 필요한 덕목(德目)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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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저자는 유대인 학살을 했던 ‘아이히만’의 예를 들며, ‘생각’하지 않으면 ‘악마’가 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그러나 기록에 따르면 ‘아이히만’도 많은 생각과 고민을 했습니다. 전범재판정에서 ‘아이히만’은 명령을 따를 것인지, 자신의 양심을 따를 것인지 고민했고, 그가 결정한 것은 ‘군인으로서 명령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즉 아이히만은 너무 성실한 공무원이었기에 악마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무슨 말이냐고요? 그는 자기에게 주어진 일, 즉 유대인들을 죽음의 장소로 이동시키라는 윗사람의 명령을 너무 성실하게 따랐던 것입니다. 어찌 보면 그는 아주 유능한 사람이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성공적으로 해냈으니까요. 그럼 무엇이 문제였을까요? 아렌트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엄청난 범죄를 저지른 것은 아무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아이히만의 경우를 보면 악마란 악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생각하지 않는’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히만은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따져 보지 않았던 거예요. 그냥 주어진 일을 기계처럼 무조건 했던 것이죠. 생각이 없으면 우리도 언제든 악마가 될 수 있는 겁니다. (p.50) |
(1) 만약 여러분이 ‘아이히만’ 상황이라면 ‘명령’을 따르시겠습니까, 아니면 ‘자신의 양심’을 따라 행동하시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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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처럼 ‘아이히만’도 많은 생각과 고민을 했습니다만, ‘악마’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책의 저자 고병권이 말하는 ‘다르게 생각하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어떤 덕목(德目)이 필요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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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생각한다는 것’은 ‘다르게’ 생각하는 것이며, 철학을 공부함으로써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고 합니다. 아래의 글은 ‘동일자의 철학’과 ‘개별자의 철학’을 설명하고 있는 글입니다. 물음에 답해 주세요.
A. 동일자의 철학 : 보편성
동일자의 철학은 ‘나’ 혹은 ‘자기’ 중심의 철학, ‘주체’ 중심의 철학입니다. 이 서양의 전통적 철학은 자기 아닌 다른 것들, 자기 밖에 있는 것들을 자기의 테두리, 자기의 범주 속으로 편입시킵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대상화한다’라고도 합니다. 이런 편입은 사물을 인식할 때 두르러지게 일어납니다. 인식이란 지식을 얻는 과정, 혹은 그 결과입니다. 우리가 어떤 종류의 사물들에 대해 지식을 얻으려고 할 때, 우리는 개개 사물의 고유한 내재적인 특성을 알려고 하는 대신, 그런 개별적 특성을 모두 추상시키면서 그런 사물들 모두에 공통적인 속성을 얻으려고 합니다. 이 경우 필연적으로 개개 사물의 고유성의 파괴가 발생하죠. 우리의 틀에 들어오지 않는 특성은 자연히 배제되어 버립니다. 능동적으로 표현하면, 우리의 틀로써 사물의 고유성을 배제시킵니다. 이런 동일성의 관점, 태도가 사회적으로 나타나면, 어떤 그룹, 계층, 민족을 동일자로 설정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주변인, 비정상인을 동일자의 영역 밖으로 몰아내며 배제시킵니다. 그러나 이 공통적 특성이라는 것은 우리가 인식의 유용성, 지식의 유용성을 부정하지 않는 이상 불가피하게 인정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나는 모든 이데올로기는 구체적인 개인들을 주체로 호명(呼名, interpellation)한다고 말하고자 한다. (중략) 우리는 경찰의 일상적인 호명과 같은 유형 속에서 그것을 표상할 수 있다. ‘헤이, 거기 당신!’ 이렇게 호명된다면 호명된 개체는 뒤돌아볼 것이다. 이 단순한 180도 물리적 선회에 의하여 그는 주체가 된다. 왜냐하면 호명이 바로 ‘그’에게 행해졌으며, ‘호명된 자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 ( 알 튀세르의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 중에서 )
사람이 태어났을 때, 그는 벌거벗은 한 개인에 지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사회는 그를 부를 준비를 갖추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김이라는 성을 쓰는 가정의 한 성원, 남자, 한국인, 노동자 계층이라는 사회구조 속에 던져지는 것입니다. 이런 사회구조에 익숙해 있는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은 이제 하나 둘씩 순차적으로 정해진 내용들을 가지고 그를 부르기 시작합니다. “얘야”라고 부르는 순간, 그리고 그것이 자신을 부르는 것이라는 것을 알고 대답하는 순간, 구체적 개인은 점차 특정한 주체로 구성되기 시작하지요. 결국 호명이란 행위를 통해서 사회 구조의 어떤 한 가지 배역을 떠맡게 되는 것입니다. 알튀세르에 따르면 이렇게 주체로 호명된 뒤, 구체적인 개인이 현실적으로 수행하는 생각이나 행동들에 이데올로기가 표상 체계로 작동하게 됩니다. 알튀세르는 주체가 설정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어떤 형식이든 특정한 이데올로기가 먼저 전제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이 논의에 따르면 애당초 인간에게 온전한 ‘나의 선택’이란 있을 수 없으며, 우리는 동일성의 관점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알튀세르의 절망과 고민이 여기에 있었습니다.
B. 타자의 철학 : 개별성
자신이 속한 구조가 슬픔을 준다면 인간이 자신의 기쁨을 위해서라도 구조를 해체하고 새로운 구조를 만들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선택하는 온전한 내 삶을 시작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의미 체계와는 다른 의미 체계를 생산할 수 있어야 하지요. 마침내, 말년에 알튀세르는 <마주침의 유물론이라는 은밀한 흐름>이라는 제목을 단 장문의 논문을 통해서 스피노자(Spinoza)적이면서도 니체(Nietzsce)적인, 그리고 에피쿠로스(Epicurus)적인 이야기를 펼치기 시작했습니다. 코나투스(conatus)를 타고난, 다시 말해 자신의 존재를 집요하게 유지하려는 ‘힘에의 의지’, 그리고 자신들의 ‘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자기 앞을 비워두려는 힘과 의지를 타고난 개인들이 서로 마주치면서 새로운 의미체계를 구성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변화를 가능하게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수수한 결단이 아니라 우리가 마주친 타자의 타자성이라는 것입니다. 기존의 의미를 뒤흔드는 타자와의 마주침을 통해서만 주체는 의미를 새롭게 생산할 수 있고, 비로소 우리는 과거의 의미 체계에 의해 규정된 주체 형식을 벗어나 새로운 주체 형식으로 변화될 수 있습니다.
이 개별자의 철학을 논리화한 것이 들뢰즈와 가타리가 주창한 노마디즘(Nomadism)입니다. 노마디즘(Nomadism)는 특정한 방식이나 삶의 가치관에 얽매이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자아를 찾아가는 것을 뜻하는 말로, 살 곳을 찾아 끊임없이 이동하는 <유목민(노마드, Nomad)>에서 나온 말입니다. 기존의 가치나 철학을 부정하고 새로운 것을 끊임없이 찾는 것을 뜻하며 학문적으로는 여러 분야를 넘나들며 탐구하는 것을 뜻합니다. <노마드(Nomad)>는 사전적으로는 '유목민', '유랑자'를 뜻하는 말이지만, 공간적인 이동뿐 아니라 특정한 삶의 방식에 매달리지 않고 끊임없이 자신을 바꾸어가며 창조적인 행위에 바탕을 둔 삶을 사는 사람을 말합니다. |
(1) <제시문A> ‘알 튀세르’의 사유에 따르면 애당초 인간은 사회 환경에 따라 구성되기 때문에 ‘다르게 생각한다’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여러분은 ‘알 튀세르’의 생각에 동의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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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이 책에서 저자 고병권이 말하고 있는 것은, ‘다르게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다르게 생각하기 위해서는 <제시문A> ‘동일자의 철학’을 따라야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제시문B> ‘타자의 철학’을 따라야 하는 것일까요? <제시문A> ‘동일자의 철학’이라고 생각하시면 찬성표지판(○)을, <제시문B> ‘타자의 철학’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시면 반대표지판(×)을 들고 그 이유를 말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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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현재 우리 사회의 의식은 <제시문A>의 ‘동일자의 사유’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아니면 <제시문B> ‘타자의 사유’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말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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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만약, 우리 모두가 <제시문B>를 따른다면 사회가 정해 놓은 도덕이나 질서, 법을 따라 사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제 생각하는대로 살아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은 <제시문A> ‘동일자의 철학’을 지지하시겠습니까? 아니면, <제시문B> ‘타자의 철학’을 지지 하시겠습니까? <제시문A> ‘동일자의 철학’이라고 생가하시면 찬성표지판(○)을, <제시문B> ‘타자의 철학’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하시면 반대표지판(×)을 들고 그 이유를 말씀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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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그렇다면,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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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을 읽은 후 나의 삶에 적용할 실천사항을 이야기해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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