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권 독서일기

벤야민과 아도르노, SNS를 말하다

도서관돌이 2011. 5. 17. 13:08

2010년 9월 기준으로 전 세계 페이스북 사용자는 5억 2천만 명, 트위터 사용자는 1억 5천만 명을 넘어섰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대한 관심은 국내의 경우도 마찬가지이다. ‘손 안의 컴퓨터’ 스마트폰 출시 이후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비롯한 각종 소셜미디어의 한국 사용자 수 역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얼마 전 우리나라 스마트폰 사용자는 772만 명을 넘어섰고, 덕분에 SNS는 우리 삶 더욱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었다.
 
  이러한 소셜미디어는 새로운 ‘대중문화’가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기존의 정보 전달 방식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지금까지 공급자가 수용자에게 정보를 제공하면 수용자는 그 정보를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즉 ‘공급자 중심의 push- driven 방식’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대중’이 활동하는 온라인 공간에서 정보의 공급자와 수용자는 동등한 위치에 있다. 이렇게 정보를 함께 나누는 과정을 통해, 서로의 의견 수렴이 가능해졌음은 물론이다. 특히 트위터는 기존의 블로그, SMS, 메신저, 커뮤니티의 장점을 모아서 만들어졌기에 대중에게 더욱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사람들은 언제나 학문이 현실보다 뒤에 있다고 생각한다. 과연 20세기 철학으로 21세기 SNS현상에 대한 설명을 할 수 있을까? 물론 가능하다. 현재의 SNS 현상에 대하여 충분한 설명을 전해 줄 철학자가 여기 있다. 테오도어 아도르노(Theodor W. Adorno, 1903~1969)와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 이제 그들의 목소리에 다시 귀 기울여야 할 때이다.
 
  아도르노가 말했듯, 대중문화에는 언제나 ‘문화산업’의 의미가 따른다. 아도르노는 대중문화를 이윤을 추구하기 위한 일종의 산업 활동으로 여겼다. 나 역시 그 의견에는 충분히 동의한다. 하지만 의견에 동의할 뿐, 상황을 부정적으로 보지는 않는다. 그리고 어쩌면 아도르노의 대중에 대한 걱정이 지나쳤을지 모른다고 조심스레 생각해본다. 오늘날 대중의 자발성은 생각보다 강했고, 의식 수준 또한 높다. 모든 면에서 아도르노가 염려했던 것 이상이다. 즉 우리 대중은 대중문화를 통해 일방적으로 전달되는 지배 이데올로기를 충분히 걸러낼 능력이 있다. 나아가 대중문화에 담긴 이해관계를 인식하고 각자의 호불호를 드러내기도 한다.
 
  물론 아도르노의 우려도 틀린 말은 아니다. 거대 문화산업 속에서 나름의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사실 따지고 보면 선택지를 만든 누군가의 의도가 개입된다. 어쩌면 자발적인 선택이라는 개념 자체가 허상일 수도 있다. 또한 그의 말대로 대중매체를 통해 어떤 개인은 그저 대량 소비의 주체 정도로 재생산될지도 모른다. 이처럼 대중문화에는 어두운 면만 있는 것일까?
 
  벤야민은 기술 복제라는 새로운 테크놀로지가 예술의 본질과 기능에 있어서도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 믿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낙관적으로 바라보았다. 벤야민은 예술작품이 갖는 하나뿐인 현존성을 아우라라 지칭했다. 그리고 오늘날 기술 복제 시대가 오면서 아우라가 붕괴되는 것을 긍정적인 관점에서 파악했다. 기술 복제를 통해 예술의 복제가 이루어졌다. 대중에게 더 이상 예술은 숭배 가치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제 예술은 대중이 동등한 위치에서 바라볼 수 있는 전시 가치의 대상이 된 것이다.
 
  물론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에서 원본과 진품에서 보이던 아우라를 찾는 일은 어려울 수 있다. 하지만 문제의 핵심 또한 바로 여기에 있다. 아우라의 희소성이 높아질수록 대중은 다시 아우라를 그리워하고 일회성이 느껴지는 예술작품을 찾게 될 것이다. 영화와 별개로 연극 장르가여전히 사랑받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기술 복제 시대에서 예술작품이 대량 생산되는 것은 대중이 예술을 즐길 수 있는 기회의 대중화로 말할 수 있다. 즉 특정 계급이 누리던 예술이 일반 대중에게까지 전해진 것이다. 이러한 기회의 대중화는 오늘날 인터넷의 발달로 더욱 확산되었다. 특히 인터넷 문화는 대중 스스로 자신의 문화를 직접 만들어 내고 유통까지 하는 데 의의를 가진다. 획일적 대중문화가 아닌, 다양한 소수자의 문화를 만드는 것은 무척 긍정적인 변화이다.
 
  기회의 대중화는 정보의 대중화로 다시 이야기할 수 있다. 정보의 대중화를 이끄는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앞에서 언급한 SNS 현상을 살펴보자. SNS 중에서도 특히 트위터는 양방향 소통이 가능하다는 것 외에도, 정보를 받을지에 대한 판단 여부를 수용자가 결정하는 데 의의가 있다.
 
  덕분에 정보의 공급자는 언제나 수용자의 입장에서 그가 원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그에게 맞는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트위터는 분명 아도르노의 마음에 흡족할 만한 특징을 가진다. 늘 공급자 입장에서 이루어지던 대중문화를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던 아도르노에게 수용자의 입장을 고려하는 트위터는 무척이나 매력적으로 다가갈 것이다. 사실 초기의 인터넷 문화에는 권력의 여하에 따라 정보의 독식과 편재는 물론 왜곡까지 가능했기에 많은 문제점을 지녔다. 또 인터넷이라는 매체가 갖는 익명성과 집단의 군중심리에 따른 폭력성 문제를 야기해 곤란한 상황이 벌어지곤 했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점들이 트위터에서는 나타나지 않는다. 우선 트위터는 정보의 제공을 수용자인 대중이 직접 하기에 다른 어떤 매체보다 공평하다. 물론 너무 많은 정보들이 쌓이고 그 안에 의미 없는 이야기도 상당수 존재하는 것이 단점이 될 수도 있지만, 그걸 구분하고 걸러내는것 역시 대중의 몫이기에 긍정적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다.

 


벤야민 & 아도르노

저자
신혜경 지음
출판사
김영사 | 2009-02-05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국내 젊은 학자들이 새롭게 해석한 동서양 지식인 100인의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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