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불문학상을 받은 <플라멩코 추는 남자>로 화려하게 문단에 등장한 허태연 작가는
2022년 <하쿠다 사진관>으로 많은 독자를 흡입하며 유명세까지 갖게 되었다.
그리고 또다시 부지런히 세상에 보인 작품이 <중고나라 선녀님>이다.
선녀는 주인공의 당근마켓 아이디이다.
경영은 하지 않지만 대기업의 주인이나 마찬가지인
선여휘 여사. 남편은 한달에 한번 볼까말까하고 딸은 회사의 후계자 수업을 받고 있다.
그녀의 일상은 엄청난 자본만이 감당할 수 있는 재벌가들의 생활 그대로다.
다만 남다른 것이 하나있으니
십년전 아들이 음주운전 차량과 사고가 나서 식물인간 상태라는 점이다.
어느날 외로움을 해소하고자 운명처럼 당근마켓 중고나라의 세계로 들어가게 된 선여사.
그곳에서 만난 화가는 자신의 운전기사가 되고
거래 현장에서 핸드폰을 날치기 당하기도 하며
심지어는 피가 난무하는 범죄의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
타인과의 일반적인, 때로는 이상한, 때로는 위험한 거래가 벌어지는 와중에
갑작스런 아들의 죽음이 찾아오지만
이야기는 슬픔에 젖지 않고 희망을 비추면서 내일이 궁금해지는 행복한 결말을 맞는다.
선여휘가 소설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외로움 때문이다.
'엄마는 창녀다'라는 영화에서는 아들이 엄마의 성매매를 광고하고
엄마가 성매매에 나서는 비상식적인 설정이 나오는데
엄마가 그러는 이유는 따뜻해서 좋기 때문이다.
인류 출현 이후 최고의 풍요를 맞고 있으면서도 지독한 외로움에 시달리는 현대인의
고통을 이보다 처절하게 묘사한 장면이 있을까.
재벌인 선여휘도 예외는 아니여서 당근마켓을 기웃거리는 것이다.
물론 재벌의 외로움 극복방식으로 중고거래를 핑계삼아 타인을 만나는 설정은
해리포터 보다 높은 수준의 판타지이기는 하지만
외로움이라는 멍에를 짊어지고 평생 외로움과 싸울 수밖에 없는 인간의 숙명을
허구로 잘 짚어낸 작품이 아닐까 싶다.
우리는 바로 그 외로움 때문에
서로가 서로를 찾고
그 마찰열로 세상에 온기가 도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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