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작도서관 한책읽기

한책읽기 독서회 34차 토론 논제

도서관돌이 2016. 8. 24. 10:30

시인 동주_안소영_창비


*본 토론 논제는 행복한상상에서 만들었습니다.

*실제 토론에서 다룬 논제는 빨간 글씨 처리하였습니다.


논제 : 시인 동주

자유논제

 

1. 책 읽은 소감을 나눠 봅시다. 먼저 1점부터 5점 사이에서, 자유롭게 책 별점을 주세요. 읽은 소감도 들려주세요.

별점 (1 ~ 5)

이규림 ★  ★   ★   ★    평소 관심이 많아 시집을 구입해보기도 하고 <동주>영화도 보았다. 윤동주 시인의 삶에 더 가까이다가갈 수 있어 좋았다.

박승애★   ★   ★    실제 인물을 다룬 전기 소설이어서 작가의 상상력으로 복구한 생활 묘사와 실제와의 극복할 수 없는 괴리를 의식하다보니 감정이입이 잘 되지 않았다.

조선녀★   ★   ★   ★   ☆ 시인을 좋아하는 마음을 간직해오고 있다.  맑은 사람일 것으로 생각되는 시인처럼 맑은 소설이다.

홍길려★   ★   ★   ★   ★   윤동주 시인의 실제 생애를 알 수 있어 좋았고 책을 읽은 때가 광복절과도 가까운 시기라 더욱 와닿았다.

읽은 소감

    

 

2.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3. <시인 동주>에는 윤동주의 여러 편의 시가 실려 있습니다. 작품 속에 나오는 시 중 가장 와 닿았던 시를 소개해주세요.

초한대 (p.77)

이런 날 (p.81)

슬픈 족속 (p.116)

십자가 (p.166)

우리들의 사랑은 한낱 벙어리였다. (p.171)

눈 오는 지도 (p.172)

눈 감고 간다 (p.179)

우물 속의 자상화 (pp.187~188)

또 다른 고향 (pp.193~194)

별 헤는 밤 (pp.195~197)

서시(p.198~199)

그 외

 

4. 창씨개명이 일어나고, 우리 민족은 모국어를 빼앗깁니다. 온 사방이 낯선 날 말로 가득한 때에도, 동주는 우리말로 시를 씁니다. 이런 동주의 모습을 여러분은 어떻게 보셨나요?

이러한 날들을 보내면서도 동주는 여전히 시를 썼다. 경성에서도 그랬지만 사방이 낯선 나라 말로 가득한 이곳에서는 더욱, 우리말로 시를 쓰는 것은 부질없다 못해 의아한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주는 떠오르는 시상을 붙잡고, 심장과 혈관 속에서만은 자유롭게 흘러 다니는 우리말을 찾아, 한 편의 시로 노트에 옮겨 적는 시간에 좋았다. 시구에 몰두하다 보면 날로 삭막해져만 가는 학교와, 교련 시간에 이지마 대좌에게 받는 모욕, 학비 봉투를 받을 때마다 드는 송구하고 착잡한 마음이 저만치 물러가곤 했다.(p.229)

 

 

5. 대학생 동주는 최현배 교수의 모국어에 대한 강의를 듣고 깊은 감동을 받습니다. 여러분은 아래와 같은 최 교수의 강의를 어떻게 보셨나요?

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태어나면서부터 말하고 듣고 더불어 살아가는 모국어가 있습니다. 누구나 모국어를 통해 자신을 둘러싼 세계를 인식하고 사유하며, 삶을 배워 갑니다. 그러므로 모든 모국어 속에는 그 민족의 역사적 얼이 담겨 있다고 하겠습니다... 부디 잊지 말기 바랍니다.”(p.21)

 

6. 최근 윤동주를 영화로 한 <동주>가 개봉되었습니다. 이처럼 윤동주가 재조명되는 이유 중 하나는 일본 식민통치의 횡포가 극에 달했던 때, 우리말을 지키려 한 그의 강렬한 작가정신 때문일 것입니다. 많은 문인들이 친일에 설 때도, 윤동주는 모국어로 시 쓰기를 감행했습니다. 윤동주의 삶, 당시의 시대배경을 보는 우리는 숙연해 지기도 하는데요.

하지만, 광복 70주년이 지난 지금도 친일잔재문제가 거론되고 있습니다. 아래와 같은 친일 잔재 청산을 위한 노력도 있지만 청산해야 할 문제들이 많습니다. 친일파 재산에 대한 환수 문제는 진행 중이기도 한데요. 소송이 잇따르며 여의도 면적의 ¼에 달하는 땅이 다시 후손들에게 돌아갔다는 뉴스가 보도되기도 했습니다.(2015. 8. 15) 여러분은 친일잔재 문제에 대해 어떤 견해를 갖고 계신가요?

 

대구시교육청도 일본향나무 없애기에 동참했다. 19091월 이토 히로부미가 대구 방문 기념으로 달성공원에 일본향나무 두 그루를 심은 것을 시작으로 행정관청, 학교, 주택 등에 집중적으로 심어졌다. 대구 지역 초··고교 50여곳에 1000여 그루, 경북 지역 10여개 시·400여곳에 1만여 그루의 일본향나무가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시교육청은 전체 초···특수학교(441)에 일본향나무가 교목일 경우 이를 교체하라는 요청 공문을 보냈다. 또 학교 상징물이나 국기게양대 주변의 일본향나무를 우선 제거하고 무궁화를 심도록 했다.

 

서울시가 국세청 남대문별관을 철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일제가 1937년 덕수궁 기운을 해치기 위해 지은 건물이 국세청 남대문별관으로 이용됐었다. 서울시는 이 자리에서 다음 달 17일 광복 70주년 기념으로 조성한 시민광장 개장식을 갖는다. (국민일보 2015. 8. 1)

 

찬반 / 선택 논제

 

1. 동주는 연희 전문 문과에 진학하길 희망합니다. 하지만, 아버지는 극구 반대하고 나섭니다. 아버지가 동주에게 권한 것은 의학 전문학교였습니다. “이 어수선한 세상에 그만한 직업이 없을 것”(p.67)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동주는 문과 진학 의지를 꺾지 않습니다. 이에, 아버지는 밥상을 엎거나 물그릇을 내동댕이치기도 합니다. 만약, 여러분이 동주의 상황이었다면, 그처럼 행동했을까요?

좀처럼 어른들을 거스른 적 없던 동주가 얼굴을 붉히며 제 뜻을 세울 때마다, 아버지의 성난 고함도 터져 나왔다. 때로 밥상이 엎어지거나 물그릇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지기도 했다.(p.65-66)

 

- 동주처럼 했을 것이다. (아버지와 맞서)

- 동주처럼 하긴 어려웠을 것이다. (아버지의 뜻을 따라)

 

2. 동주 아버지는 아들의 문과 진학을 극구 반대하고 나섭니다. 자신이 문학도였기에, 그 만만치 않은 삶을 알기에 그랬습니다. 아버지는 그때까지도 할아버지에게 기대어 살아가야 했습니다. 아버지가 동주에게 권한 것은 의학 전문학교였습니다. “이 어수선한 세상에 그만한 직업이 없을 것”(p.67)이라는 생각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동주는 문과 진학 의지를 꺾지 않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동주 아버지의 상황이었다면 어느 쪽 진학을 지지했을까요?

좀처럼 어른들을 거스른 적 없던 동주가 얼굴을 붉히며 제 뜻을 세울 때마다, 아버지의 성난 고함도 터져 나왔다. 때로 밥상이 엎어지거나 물그릇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지기도 했다.(p.67)

 

- 문과

- 문과가 아닌 다른 과

 

3. 동주와 동료들은 조선 문단에서 벌어지고 있는 논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눕니다. 인간 내면을 치열하게 그려야 한다는 주장과 현실의 고통을 담아내야 한다는 쪽으로 나뉘는데요. 여러분은 문학에서 어느 쪽을 더 중요하게 다뤄야 한다고 보시나요?

자네 말처럼 그 두 가지가 함께 어우러지면 오죽 좋겠나? 하지만 신진 작가들은 사람 내부에서 소용돌이치는 감정을 분석하는 데만 힘을 기울이고, 정작 그 인물을 고통스럽게 하는 사회 현실은 외면하고 있네.”

그렇지만 거리의 구호나 현실 모사가 그대로 문학이 될 수는 없지 않겠나? 그런 작품들에서 나는 그리 감동을 받지 못했네.” (p.104)

 

- 인간 내면을 더 치열하게 그려야 한다.

- 현실의 고통을 더 담아내야 한다.

 

4. 일본의 식민 통치가 30년이 되어 가자, 지식인들은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생각하기도 합니다. 이에 현실을 인정하고 살길을 찾아가는 문인들도 있었습니다. 새로운 체제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이들의 모습을 토론해봅시다. 다음 중 무엇이 더 이들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보시나요?

비단 총독부의 강압 때문만은 아니었다. 일본의 식민 통치도 어느새 30년이 되어 가고 있었다. 어린아이가 자라 어른이 되고 또 그의 아이가 자라나는 시간이었다. 지식인들 사이에는, 조선이 일본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널리 퍼지고 있었다. 중일 전쟁 뒤로는 더했다. 일본군이 연이어 중국의 주요 도시를 점령하고 장개석의 국민당 정부가 쫓겨 가는 것을 보면서, 일본 제국주의에 대한 두려움과 조선 민족 운동에 대한 패배감이 함께 생겨났다. 조선이 어찌해 볼 도리 없이 일본의 식민 통치는 영구하고도 견고해 보였다. 그러니 현실을 인정하고 그 아래서 살길을 찾아야 한다는 생각이 고개를 든 것이다(pp.98-99)

조선 지식인들은 몹시 혼란스럽고 피로했다. 식민지에서 총독부 당국에 비판적인 지성인으로 살아가기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었고, 신변도 점점 위태로워졌다. 예리함이 무기요 긍지였던 지성은 점점 무뎌지고 둔감해져 갔다. 자신의 힘으로는 어찌해 볼 수 없는 거대한 흐름이 밀려오고 있었다. 해 봐야 소용없는 비판과 저항은 이제 그만 멈추고, 새로운 체제를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하지 않을까. 다른 사람의 시선뿐 아니라 자신의 양심도 설득할 수 있는 그럴듯한 논리를 찾느라, 식민지의 창백한 지식인들은 카페와 공원에서 값싼 담배 연기를 꽤나 흩날리고 있었다(p.146)

 

- 시대의 흐름이 더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 개인의 의지가 더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5. <시인 동주>의 작가 안소영은 그간 <책만 보는 바보> <갑신년의 세 친구> 등의 청소년 역사소설을 써왔습니다. 역사 속 인물의 이야기를 소설로 풀어낸 것인데요. 여러분이 독서토론을 진행해야 하는 교사라면 <시인 동주>를 토론 도서로 선정하겠습니까?

 

- 선정하겠다.

- 선정하지 않겠다.

 

* 오늘 토론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을 소개해주세요.

000“ ”라는 말이었습니다. 기억에 남는 이유는요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 토론 참여 소감을 세 줄로 써보세요. 이어, 토론 참여 소감을 나눠봅시다.